가난은 친구처럼 줄곧 저와 함께 했습니다. 모두 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갈 땐 가난이 돋보이지 않았습니다. 그러나 제가 사회에 한발씩 나아갈수록 가난의 그림자는 커졌습니다. 정장이란 글자는 꽤나 큰 그림자를 제게 드리웠습니다. 돈을 벌려 직장을 구하는데 이를 위해선 정장을 살 돈이 필요했습니다. 모순된 악순환은 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을, 그들의 가족들을 맘 아프게 해 왔을 것입니다. 열린옷장은 저를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. 집을 나가기 전 거울을 보며 히죽거리게 해주었습니다. 면접장에 들어가며 어깨가 움츠러 들지 않게 해주었습니다. 제가 봤던 면접에서 면접관은 제게 물었습니다. "정장 입으니 어때요?" 그 대답을 빌린 옷장에게도 드리겠습니다. "좋았습니다." 감사합니다.

2019년 6월 20일
대여자 김민호님